여행후기/동영상 |
‘프로방스 낭만 여행’을 다녀와서
프로방스, 내 마음의 푸른 하늘아!
행복의 절정 속을 여행하다
프로방스를 다녀 온 후 내 마음 속에는 푸른 하늘이 하나 더 생겼다. 그윽이 펼쳐진 푸른 포도밭 너머로, 들판 너머로 한없이 푸른빛으로 다가오던 하늘. 나는 프로방스에서 가장 넓고, 넉넉한 하늘을 보았다. 하늘과 더불어 말로만 듣던 바람, 미스트랄과 더불어 프로방스를 만났다. 김화영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명예교수의 표현처럼 ‘푸른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황금빛 방울처럼 딸랑 딸랑’ 울리는 바로 그곳이다.
일상의 한 귀퉁이에서 가끔은 쉼표를 찍고 싶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남편, 오랜 미국 살이에 적당히 지친 스물아홉의 딸과 나. 우리 세 가족은 용감무쌍하게 그동안 마음에 두고 소망하던 프로방스 행을 택했다. 이홍식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가 힐링멘토로 동행한다니 든든하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남으로 같이 했던 열흘의 시간. 나는 행복의 절정 속에 머물렀다. 아비뇽에서 보았던 ‘아비뇽 유수’의 흔적들은 인생무상을 느꼈지만 다정다감한 세귀레의 골목길을 밟으며, 또 오래 된 푸른 포도밭 어귀에서는 ‘인생은 참 아름다운 것이구나’ 싶었다. 정지된 나의 내면과 현실의 피곤함에 절어 있던 몸은 프로방스 들판에 향기롭게 번지는 노란 꽃의 향기 속에서 쾌적하게 깨어나는 듯했다. 우리 식구는 손을 잡고 걸으며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고, 앞으로의 날들을 계획하며 오붓한 대화를 오래토록 나누었다. 혼자만의 여행도 소중하지만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행복감이 밀려왔다.
‘아리랑’과 ‘올드 랭 사인’
미슐랭 스타 쉐프 레스토랑에서 환상적인 식사를 즐겼다.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와인과 많이 친해지게 된 것도 이번 여행의 소득이다. 와인 라벨을 보면서 나름대로 그에 관한 그림도 그릴 수 있으니 소득이 크다. 이틀의 트레킹을 하면서 걷는 즐거움과 낯선 곳의 산길 풍경이 익숙하게 여겨졌다. 무엇보다 오래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세낭크 수도원으로 가던 도중 점심을 먹게 된 레스토랑에서의 일이다. 우리 일행의 숫자 보다 더 많은 프랑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먼저 식사 중이었다. 어떤 계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와인을 나누어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따뜻하고 친절한 환대를 베풀었다. 먼저 그들은 우리를 위해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우리 역시 답가로 ‘아리랑’을 들려주었고, 이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레스토랑에는 그들의 답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적한 프로방스 어느 레스토랑에서 뜻밖의 ‘앵콜’ 요청을 받은 우리는 마지막 곡으로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그들은 ‘올드 랭 사인’으로 우리와 작별을 아쉬워했다. 우리 모두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가슴으로 전해지는 감동에 젖어들었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남편은 그 순간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가장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춤추는 몸짓까지 보였다. 나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정성담긴 노랫소리에 뭉클한 눈물이 흘렀다. 참 아름다운 기억이다.
엑상프로방스에서는 폴 세잔의 흔적을 따라갔다. 시시때때로 빛깔을 달리하는 빅투아르 산을 직접 보니 세잔이 왜 이 산을 사랑했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아비뇽과 세귀레, 아를에서 찾은 반 고흐의 흔적들. 론 강 앞에서 이젤을 펼치고 그림을 그렸을 고흐를 떠 올릴 수 있었다. 그의 굴곡진 삶과 달리 도개교와 론 강이 어우러진 아를의 풍경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반 고흐의 명복을 빌고 싶은 애잔한 마음에 나도 몰래 잠시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의 삶이 눈물겨워 울컥했다.
가족 그리고 새로운 여행에 대한 설렘
아침식사를 안하는 우리 가족도 프로방스에서의 아침은 늘 챙겼다. 식탁에는 신선한 치즈와 요거트, 과일, 햄 등이 풍성했다. 8박10일 동안 먹고 마시고 느끼고 움직이며 마음으로 기록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오래 오래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 온 후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가 그곳에서 만들어졌음을 발견한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딸과 함께 손을 잡고 이어폰 하나를 나누어 귀에 꽂고 들었던 바흐의 칸타타와 교향곡들, 지나간 샹송…. 내게 그 순간들은 빛나는 천국의 순간처럼 감미롭고 행복하게 남아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딸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딸 역시 내 마음과 같았다. 남편과 딸은 여행 내내 장난치며 어린아이처럼 깔깔대곤 했었다. 우리는 이렇게 추억을 만들고 돌아왔다.
내년에는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또 다른 추억을 만들 계획에 설렌다. 아이들이 떠난 빈 둥지에서 우리 부부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걷고 또 걸을 것 같다. 좋은 기회를 만든 헬스조선에 감사를 전한다. 이런 축복을 원하는 모든 사람이 함께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글=이나경(설기문마음연구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