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동영상 |
나를 찾아 떠난 “ 산티아고 순례길 ”
나에게 준 은퇴 선물
은퇴 후 하고 싶은 일 가운데 1순위가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였다. 그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책들을 사놓고 읽어 보면서 그 길을 걸어보기를 간절히 원했다. 바쁜 일상사를 벗어나 한번 쯤 줄 끊어진 연처럼 바람가는 대로 한없이 무작정 걷고 싶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사람 한평생 산다는 거, 종이우산 한번 접었다 펴는 것”이라는데,
그 동안 무엇 때문에 바뻤는지도 모르는 채, 바쁜 일상사를 핑계로 정말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늘 들었다. 그래서 은퇴를 기회로 누구에게도 쫓기지 않고, 급히 해 치워야 할 일도 없이, 그냥 나 혼자 하늘을 보며 바람을 느끼며 길에다 몸을 마낀 채 걸으며 나의 삶을 재충전하고 싶었다. 드디어 8월 31일. 34년 6개월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내 인생에 대한 예의로 그동안 수고했다고 칭찬하며, 위로하며, 다둑거리며,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선물을 한 것이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내가 나에게 주는 은퇴 선물”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돌아올 쯤에는 새로운 삶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길
200키로를 걸으러 산티아고를 간다고 하니 모두들 힘들다고 말렸다 특히 아들은 나의건강을 염려하며 살 좀 빼고 걸으라고 했다. 이런 나를 위해 의료진도 함께 가니 안심하라고 하면서 아들이 챙겨 준 응급조치용 구급약과 신발 깔창 등 걷는데 필요한 용품과 나의 내면 여행에 필요한 것 들만 챙겼다. 그동안 외국 관광여행을 갈 때면 정작 여행지에서는 한 번도 쓸 기회가 없었던 잡다한 물건들과 의상, 그리고 한 달 머물러도 될 우리 먹거리 들 등을 가방 가득 꾸려 힘겹게 들고 다녔다. 그리고 여행지에서는 “타세요,” “내리세요”, “ 보세요” “사세요”만 하다가 그 아름다운 풍광도 유적도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간편한 짐들을 보며 이번 여행은 제대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찾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길을 걸으며 그야말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쉬게 하면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나는 길이 되기를 다시 한번 기원하였다. 200키로 내내 나는 느릿 느릿 걸으며, 내 자신에게 무엇을 버리고 갈 것인지, 무엇을 끝까지 가지고 갈 것인지를 쉬엄 쉬엄 물으며,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함께 하는 당당한 노년의 삶을 구상하면서 걸었다. 인생을 좀 살아보니 성공과 행복은 다르지 않던가. 앞으로 ‘성공의 기준을 내가 즐기고 행복해 하는 것에 맞추면, 노년의 삶은 풍요로운 가을을 거쳐 우아하고 품위있는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으며 어느새 나는 과거에 고쳐야 할 부분들을 떠 올리고 미래의 삶을 위해 정비 수리 하면서 남은 삶의 재충전할 에너지를 나의 내면에 비축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이름모를 야생화 흐드러지게 핀 언덕길을 따라, 추수가 끝난 끝없이 펼쳐진 밀밭의 대평원과, 오가는 양떼들이 지나가게 하기 위해 길을 양보하며, 곳곳에 흐르는 작은 시냇가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는 여행자들을 보며 능선을 따라 언덕길을 오르며 숲속을 지나 느릿 느릿 걸었다. 그리고 마을 가까이 오면 카페와 알베르게를 지나는 마을들이 나를 따라 느리게 지나가고, 나는 그것을 즐기며, 음미하며 걸었다. 그러다 몸과 다리가 지쳐오면 바르에 들어가 찬 생맥주를 마시며 열심히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 외국 사람들을 만났다. 친구끼리, 부자간에, 부부간에, 가족끼리, 남, 녀 고교생들, 여러 단체들과, 또 한편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먼저 간 아내를 생각하며, 불행한 이웃을 위해, 이 길을 추억의 길로, 기부의 길로 걷고도 있었다. 이렇게 의미있는 이 길을 걷기위해 아일랜드, 멕시코, 엘살바도르,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미국 등지에서 온 분들과 길에서 만나면 서로 “ 부엔 까미노”라고 말하며 지친이 들을 격려하며 만나고 헤어 지면서 나는 이 길을 혼자 걸었지만 이미 혼자가 아니었다. 그들과 서툰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 내 마음은 그들의 다양한 삶의 풍경과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의 삶의 흔적이 나의 과거고 미래라는 것을 그들과 악수하며 포옹하며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혼자서 걷다가 식사시간이면 일행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좀 느슨해진 마음으로 제 각기의 삶의 빛깔들을 풀어 놓으며, 오랜 이웃처럼 서로 파안대소 하고, 서로 부르튼 발들을 자랑하며, 먼저 발이 아파본 경험의 명의를 찾기도 했다. 나처럼 체력을 분배해서 오는 날 까지 느리게 걸어 별 탈 없이 온 사람도 있고 신발 때문에 발가락이 곪고, 임파선이 부어 병원을 찾는 일행도 있긴 했지만 모두들 즐거워하며 걸었고 200키로의 대장정을 마치며 어떤 이들은 남은 600키로의 꿈을 꾸었다. 다시 한번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건강을 .....
내 삶의 ‘부엔 까미노(Buen Camino)’
순례길 걷기는 신앙적으로는 몸으로 기도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때껏 앞만 보고 살아온 내 삶에 대한 예의로 걸었다. “그동안 수고했노라고.” 나를 위로하며 나의 몸과 자아와 의식이 하나이기를 열망하며, 새로 펼쳐질 내 노년의 삶을 열어나갈 에너지를 얻고자 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것 일까? 나는 무엇을 잘하는 것일까? 앞으로 펼쳐질 내 새로운 삶을 어떻게 맞이할 가를 생각하며 걷고 또 걸으며 진정한 나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이 길을 걸으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그냥 일상적 축제의 시간을 혼자서 가지고 싶었고 여태껏의 삶을 정리해 볼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홀로 이면서도 결코 홀로가 아니라 이 길은 함께 하는 길 이었다. 걸으면서 만나는 이 마다 서로 격려하며 “ 올라” “부엔 까미노”라고 말하면서, 각자의 힐링 에너지를 주고 받았다. 그래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홀로 걸으면서도 모두들 함께 하는 길이 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노년의 삶은 이렇게 함께 배려하고 수용하면서 산티아고 길 걷듯이 느리게, 삶의 호흡을 깊게 하면서 이웃과 함께 성장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좀 더 친절하게 따뜻하게 사랑하고 다둑거리며 살아야겠다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나머지 남은 600키로를 꿈으로 남겨 두었다. 꿈을 간절히 꾸면 이루어진다니까....